공룡호가 사는 세상 이야기

오전에 이어 오후에도 계속 신해철의 입시학원 광고 모델에 대한 이슈가 메타블로그에 랭크되고 있다.
사실, 나는 조금 다른 입장이지만, 그에 앞서 신해철에 대한 옹호를 하자는 것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음료수 CF에 한 연예인이 모델로 출연했다고 치자. 그 연예인이 평소, 이 음료를 즐겨 마셨을까? 아니 먹어 본 적이나 있을까?

CF에 출연한 모델이, 해당 CF의 광고대상, 목적, 성격을 고려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모 연에인이 'A'아파트 CF에서 '저는 A 아파트에 삽니다' 라는 카피로 CF를 촬영했다. 얼마 후, 'B'아파트 CF에서 '살기 좋은 B 아파트'라는 카피로 CF를 촬영했다. 평소, 이 연예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에서, 자신은 주택에 살고 있으며, 아파트는 불편해서 살 지 못하겠다고 말한 바 있었다. 충분히 가능성 있고, 비슷한 예도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이런 것도 이슈가 될까?

신해철은 평소 사교육에 대한 비판을 공적인 자리에서 발언한 바 있으나, 사교육을 광고하는 CF에 출연했다.
이 행동을 가지고 일관성이라는 잣대를 근거로, 일관되지 못한 행동을 하였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거꾸로 생각 해 보자.
'사교육을 광고하는 CF에 출연한 연예인은, 사교육에 대해 긍정적이다.'
'사교육을 광고하는 CF에 출연할 연예인은, 사교육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적어도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

연예인은 그들 자신의 발언과 행동들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즉, 공인이라는 관점에서 생각 해 보면, 분명 성급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대다수의 대중들은 "이자식, 평소에 사교육 반대니 어쩌니 하더니, 사교육 광고를 찍어?" 라고 할 것은 손바닥 들여다 보듯 뻔 한 사실이다. (사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 해 보면, 사교육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해서, 사교육 광고를 찍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조금 성격이 다른 것이 아닐까.

그는 광고 출연 이후, 자신의 교육관과 이번 광고와는 충돌되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 아닌가. CF는 말 그대로 CF일 뿐, 거기에 출연하는 모델이 교육관 까지 가져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가. 다만 CF가 수년 째,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과 이슈가 집중되고 있는 교육, 그것도 사교육에 대한 광고라는 점. 그리고 모델이 평소 사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하던 신해철이라는 점. 그래서 대중의 관심이 다른 시시껄렁한(?) 그것들에 비해 훨씬 높다는 점들이 이번 이슈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사실, 신해철은 좀 더 신중히 판단했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나, 대중도 이번 CF 하나로 신해철의 인격이나 교육관 등을 비판하는 것 또한 성급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신해철이 평소의 태도와 반대되는 CF에 출연한 사실을 가지고, 생각없는 것이 아니냐. 성급한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냐. 하는 비판을 하기 이전에, 내가 비판하는 지금 또한, 성급하게 겉만 보고 비판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이번 일 뿐만이 아니다. 대상이 공인이든, 친구이든, 동료던 간에, 상대방을 비판하는 일은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기 이전에, 좀 더 넉넉한 마음을 먼저 가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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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의 문제에 있어서는 좋은 의미로 정리된 웹2.0이 내세우는 세가지 키워드가,
자칫 미래지식 경제가 부가 편중된 팔레트의 이론으로 회귀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IT-투데이에서 읽은 박세영 교수님의 글 중에 삽입된 말이다.

진화하는 웹2.0은 다시 또 고상한 단어와 철학으로 포장되고 있다.
"참여, 공유, 개방"
참여
| 표현되어진 의사들이 대중 다수의 것인가 하는 문제와
그 자유로운 표현에 의해 또 다른 사람의 자유와의 대립은 어떻게 할 것인가.
참여의 수준이 특정 분야에서는 매우 저급한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공유 | 아무런 대가 없이 타인의 재산을 공유라는 미명아래 침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개방 | 숫자로 표현되기 힘든 가치가 어떤 일방적인 잣대로 평가되는 것은 아닌지.

한번 쯤 생각 해 볼 일이다.
과연 이것들이 우리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해 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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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은식 기자

▲ 지금도 사직 야구장에 내걸리곤 하는 임수혁 선수의 모습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갈매기마당)
2000년 4월 18일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가 맞붙은 프로야구 경기가 벌어진 잠실야구장. 2루에 서있던 자이언츠 선수 하나가 갑자기 쓰러졌다. 다른 선수들과 아무런 접촉도 없었고, 심지어 2루에는 상대팀의 2루수조차 있지 않았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양팀 선수들과 관중들이 어리둥절해있던 사이 1루에 있던 용병 우드가 달려왔고, 덕아웃에 있던 트레이너가 쫒아 나왔다. 쓰러진 선수는 의식을 잃은 채 다리를 떨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이들은, 응급조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에 달리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허리띠를 풀고 헬멧을 벗긴 다음 들것에 실어 덕아웃으로, 다시 구급차로, 병원으로 옮겼을 뿐이었다. 그저 아주 더운 날, 무리한 훈련으로 탈진해서 쓰러진 선수에게 늘 해왔던 방식 그대로 말이다.

쓰러진 선수는 이미 프로생활을 시작할 무렵부터 심장 부정맥이라는 지병을 안고 있었다. 가끔 심장의 박동이 불규칙하게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병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그 순간, 심장이 갑자기 아주 느리게 뛰면서 뇌로 올라가야 할 혈액이 부족해졌고 기력을 잃은 뇌는 몸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2000년 4월 18일, 한 선수가 쓰러졌다

▲ 임수혁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그래서 그 순간,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어 뇌로 피를 보내도록 하기 위한 심장마사지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순간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수와 관중까지 수만 명이 미친 듯이 달리고 환호하고 흥분하는 그 공간에 단 한 사람의 의사도 대기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대로 들것과 구급차 속에 방치된 채 수십 분이나 흔들리며 도착한 강남시립병원에서 간신히 그의 맥박과 호흡을 살려낼 수 있었다. 그러나 좀체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이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그는 병실에서 초점 없는 눈을 껌벅이며 긴 꿈속을 헤매고 있다. 자이언츠의 '돌아오지 않는 2루주자' 임수혁 이야기다.

고려대 2학년 때부터 줄곧 국가대표로 뛰었을 정도로 그는 일찍부터 인정받은 유망주였다. 묵직한 방망이가 일품이었고, 동료나 후배들을 푸근하게 품어주는 배포와 인정이 포수로서 안성맞춤이었다. 포수로서는 드물게 종종 도루도 성공하는 기동력은 덤이었다.

1994년, 대학 졸업 후 일찌감치 상무에서 병역을 마친 그가 프로무대에 등장했을 때 그의 팀 롯데 자이언츠의 안방은 89년에 입단한 김선일, 그리고 임수혁의 대학 동기였지만 92년 졸업 후 곧바로 입단한 강성우가 지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주전포수 김선일의 기량이 조금씩 퇴조하면서 강성우의 비중이 높아지고는 있었지만, 허약한 공격력이 두 선수 모두가 가진 약점이었다.

임수혁은 입단 2년차인 95년부터 당장 김선일을 밀어내고 강성우와 함께 주전포수자리를 양분했다. 투수리드와 도루저지 같은 수비 면에서는 강성우가 나았지만, 임수혁은 공격력 면에서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해 임수혁이 때려낸 15개의 홈런은 팀 내에서 신인 마해영이 기록한 18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것이었다. 스물다섯 개가 홈런왕 가능권으로 통하던 90년대 중반 15개 이상의 홈런은 적지 않은 숫자였고, 4, 5번 합쳐 33개의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선은 충분히 무게감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더구나 팬들이 '마림포'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던 그 장거리포 콤비는 롯데 자이언츠 역사에서 원년 김용희-김용철의 '용용포' 이후 처음 가지는 중화기였다.

'용용포'를 대신한 중화기, '마림포'

▲ 임수혁을 부르는 팬들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96년에는 홈런이 11개로 주춤했지만, 타율을 3할1푼1리까지 끌어올려 그 해 자이언츠가 팀타율 1위를 기록하는데 한몫하기도 했다. 그리고 꾸준히 4할대 중반을 유지하는 장타율은 '소총부대'라거나 '똑딱이타선'이라는 조롱을 받던 팀에 요긴한 무기가 되어주곤 했다.

물론 96년에 무릎 부상을 당한 뒤로는 기나긴 부진에 빠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듬해인 97년에는 절반도 못되는 49경기에 나섰을 뿐이었고, 그 뒤로도 2할5푼 이상의 타율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그가 팬들의 기억 속에 커다란 존재감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고비 때마다 배신하지 않았던 그의 결정적인 한 방 때문이었다.

이미 그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95년. 결국 베어스 진필중의 신들린 피칭과 자이언츠 박정태의 뼈아픈 실책으로 6, 7차전을 내주며 우승컵을 넘겼지만, 그 해의 한국시리즈 5차전은 '클러치히터'라는 그의 이미지를 만든 계기였다. 그때까지 2승 2패로 맞선 채 패권의 결정적인 고비라고 여기며 나섰던 그 경기 연장 10회초에 임수혁은 중견수 앞으로 멀찍이 날아가는, 안타보다도 값진 희생플라이를 날려 승리를 결정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성 라이온즈와 만났던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야구의 추억' 박정태 선수 편에서도 묘사된 적이 있는 그 경기다). 그 해 여전히 부상 후유증에 신음하며 규정타석도 채우지 못했던 임수혁은 롯데 자이언츠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의 한 장면에 우뚝 서게 된다.

1승 3패까지 몰렸다가 호세의 역전 스리런 홈런과 박석진의 7이닝 퍼펙트 투혼으로 5,6차전을 따내며 올라선 마지막 7차전. 무대는 적지인 대구였다. 치고 올라온 기세는 등등했지만 이미 한계에 도달한 체력과 긴장감에 먼저 두 점을 내주고 몇 번의 반격에 실패하며 불안감에 젖어들기 시작했던 6회 초, 한 점을 만회하는 홈런을 날린 호세에게 관중석에서 물병이 날아들었고 흥분한 호세가 관중석으로 배트를 집어던지는 '사고'를 치면서 사태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호세에게는 퇴장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관중들과 선수들. 대구 야구장의 외야와 내야는 관중석에서 날아든 오물로 난장판이 됐고, 자이언츠 선수들은 덕아웃 뒤편에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순간, 혈기를 누르지 못하고 싸들었던 가방을 김명성 감독의 만류로 다시 풀어놓으며 '오늘만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주장 박정태의 투박한 일성을 되뇌며 나선 마해영이 보란 듯이 동점홈런을 날리고 포효했지만, 곧 이은 7회 수비에서 이미 탈진하다시피 했던 박석진이 김종훈, 이승엽에게 연속홈런을 두들겨 맞으며 다시 주저앉아야 했다. 그리고 다시 두 번 반격이 무기력하게 봉쇄되고 끈질기게 따라온, 정말 받아들이기 싫은 패배의 그림자가 눈앞을 가리던 9회 초였다.

고비 때마다 배신하지 않았던 그의 결정적인 한 방

▲ 임수혁 선수의 배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선 팬
ⓒ 서민석
원아웃 주자 1루. 타순은 호세의 것이었지만, 그는 이미 퇴장당하고 없었다. 4차전 기사회생의 역전홈런과 7차전에서 앞선 6회의 만회홈런을 날려준 호세라면 혹 기대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자이언츠 팬들은 더욱 우울했다. 그 대신 타석에 들어선 것은 이미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던 임수혁, 바로 그였다.

라이온즈 투수는 임창용. 당대 최고의 마무리였던 그 역시 상황의 중대함을 모르지 않았다. 비록 그 상황에서 강타자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임수혁의 결정적인 한 방을 의식하고 바깥쪽으로 빠지는가 싶은 공 한 개를 찔러 넣었다. 다른 건 몰라도 홈런만은 피해가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그러나 임수혁의 방망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망설임 없이 공의 궤도를 따라 돌았고, 그 당당한 체구에서 휘두른 시원한 스윙은 그대로 공을 결대로 밀어내 오른쪽 스탠드 중간에 꽂아버렸다. 동점 홈런. 불안감에 손톱을 물어뜯던 자이언츠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튕겨나와 환호했고, 그걸로 기세싸움은 끝이 나버렸다.

10회말 만루 위기를 막아내고, 다시 11회 초에 결승타를 때려낸 김민재. 그리고 11회말에 등장해 라이온즈의 마지막 저항을 3연속 삼진으로 봉쇄한 주형광. 그렇게 롯데 자이언츠는 한국시리즈에 올라섰다.

비록 진저리쳐질 만큼 처절했던 그 7번의 격전에서 쌓인 피로를 극복하지 못하고 우승컵은 이글스에 내주었지만, 최동원의 4승 역투와 유두열의 역전홈런으로 들어올렸던 84년의 우승 못지않게 자이언츠 팬들이 떠올리며 가슴 뛰는 순간은 바로 그 해 그 경기였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순간의 가장 빛나는 점 하나를 찍은 것이 바로 임수혁이었다.

그 해를 끝으로, 롯데 자이언츠에는 길고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듬해인 2000년 봄, '검은 갈매기' 호세가 미국으로 날아갔고, 임수혁이 쓰러졌다. 그리고 2001년에는 '마림포'의 다른 한 축이었던 마해영 역시 선수협의회 파동 뒤끝에 삼성 라이온즈로 떠밀려 보내졌고, '영원한 주장' 박정태는 2군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사이 팀 역시 2000년 6위를 시작으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기록적인 4년 연속꼴찌의 늪에서 헤매는 등 다시는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침체에 빠져들고 말았다.

롯데 자이언츠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너무나 미워하는 부산의 팬들. 그래서 '꼴데 팬이라고 놀림받는 것도 지겹다'며 돌아앉아서도 프로야구 중계가 있는 날이면 집나간 자식 시험발표라도 되는 듯 곁눈질하며 가슴 치는 그들은 쓸쓸하게 말하곤 한다. '임수혁의 저주'. 임수혁이 벌떡 일어나기까지 자이언츠는 절대 꼴찌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이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 임수혁

▲ 병상의 임수혁
ⓒ 김진석
물론 그것은 임수혁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구부러지고 부풀려진 미신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임수혁이라는 상징으로 떠오르는, 팬들과 함께 타올랐던 너무나 아름다운 그 순간, 팀과 팬들을 위해 헌신했던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사랑이며 고마움이며 그리움이다.

그래서 사직 경기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홈경기가 벌어지는 날이면, 그들은 임수혁의 얼굴이 새겨진 커다란 현수막을 펼쳐든 채 다시 경기장을 찾는다. 아직도 2루에서 후속타자의 적시타를 기다리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을 임수혁의 함성을 빌어, 또 그 처절했던 투혼의 이끌림을 따라 롯데 자이언츠의 후배 선수들이 깨어나 솟구쳐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며칠 있으면 스물여섯 번째 개막축포가 오를 것이고, 또 일곱 번째 '4월 18일'을 맞을 것이다. 그러면 야구장 그 파란 잔디 위로 피어오르는 화려한 봄기운 속에서 우리는 문득 허전함을 느낄 것이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2루주자가 홈플레이트에, 타석에, 그리고 가족의 품에, 팬들의 눈앞 곳곳에 남긴 커다란 빈자리 때문에 말이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 임수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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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OpenAPI 를 이용한 메쉬업 서비스에 대한 간단한 Lecture을 준비하겠습니다.
Tech는 ASP.NET으로, Language는 C# 으로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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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developerWorks
(이하 IBM dW)는 개발 입문자부터 고급 개발자까지 개발자를 위한 정보 포탈로
매주 새로운 최신 기술이나 자료/국내 개발자 소식 등을 제공한다.
여러가지 영역이 있는데, 그 중 기술영역에 포커스를 맞추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그리드컴퓨팅, 리눅스, 무선기술, 오픈소스, 웹 아키텍처, 자바, 아키텍처, 자율컴퓨팅, SOA웹서비스와 같이 9개의 카테고리를 대 분류로 하여 기술/자료/소식 등을 포털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그 외에도 로컬 컨텐츠 영역에는 국내 유명 개발자들이 릴레이식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고, 컬럼란에는 개발자의 고민과 철학 등 일반 유저가 참여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고 있는데, 아직은 인지도가 많지 않은 모양이다.

상반기 IBM dW의 대학생 1기 모니터 요원으로 간단한 설문을 해 보고자 합니다.
이 게시물을 보시는 대학생 여러분들의 많은 코멘트/트랙백을 조심스럽게 부탁드려 봅니다. (__)
성명 :
학교 :
학부/학과 :

1. 얼마나 오래 dW를 사용하셨습니까?
2. 언제 dW를 찾으십니까?
3. dW의 어느 contents를 가장 자주 이용하십니까?
4. 어떻게 dW를 알게 되셨나요?
5. dW로부터 무엇을 얻고자 하십니까?
6. 대학생들에게 dW가 한발 더 다가서기 위해 dW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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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자유발언대2006. 7. 9. 00:39
내게 다가온 낯설은.
널 기다리려 하니
언제 올지 모를 막막함이
눈앞을 가리고

널 포기하자 하니
내 사람일지 모를 미련이
마음을 잡아끌고

널 받아들이려 하니
나만큼 간절한 그리움일지
심술 하나 돋아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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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면서, 나 아닌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입술을 움직여 말로 표현해야 하는 상황. 그렇지 않으면 아예 입을 다물던가.

진심은 언젠가 전달되기에,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아껴두는 것이 대부분 상황에서 통한다.
말을 아껴서 후에 진실이 통하는 것이 더 진실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심이 언제 전해질 지 알고 말을 아낀단 말인가.
지금 당장 내 진심이 전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면...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
해야 할 말. 하지 않아도 될 말.

아껴 두어야 할 말,
반드시 해 주어야 할 말,

지금 내가 당신께 아껴야 할 말은 무엇이고, 입술을 움직여 표현해야 할 말은 무엇인지.
그것이 늘 어려운 것이다.
해야 할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다시 돌아올 말이 두려워서 하지 못하는 말은 아닌지.
그것이 늘 어려운 것이다.

또 어쩌면, 반드시 해야 할 말인데도, 상황에 따라 '그때만큼은 아껴두어도 좋을 말'로 가끔 변하기도 하니까. 그것이 늘 어려운 것이다.

그럴 땐 상대가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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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다.
마우스를 살짝 움직여 음악을 재생하고, 담배 하나를 붙여물었다.
열려진 창문에 걸려진 방충망 틈으로 소리없이 흐느끼는 바람에 담배연기는 제 몸을 맡기고,
키보드 위에 가지런히 손가락을 올려 놓았다.
누구나, 삶의 종착역이 어떤 형태로든 가슴 속에 있을게다.
달리고 또 달리고, 멈췄다 또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종착역을 향해 달린다.

사람은 말이다.
어쩌면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다시말하면, 가능성이 있는 것을 종착역으로 삼는다고 한다.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종착역으로 삼기에 부적합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때로는 가능할 거라 믿었던 종착역으로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싣고도
도착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은 멈춘다.
언젠가 열차는 다시 바퀴를 굴릴테지만...

그렇다면 가능성이 보인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열차의 성능과 연료. 그리고 노선의 유/무에 따라 가능성 여부를 판단한다고 한다면,

" 과연 나는 얼마만큼의 성능과 연료를 가지고 있을까. "
이런 말을 하면서 담배를 부벼끄며 손을 바꾸어 전화기를 돌려 잡은 내게,
" 새끼야, 연료가 없으면 돈 주고 사야지. "

명쾌한 자식. ㅡㅡ;

내일은 왕눈씌의 목상태가 좀 좋아지길 바라며, 이만 자빠져서 자야겠다. ㅋㅋ
홈페이지의 히트 카운트가 날이 갈수록 증가한다. 1만히트를 향해서 열심히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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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총기 난사사건 뒤로 모병제 논의가 불거지고 있다.
지난 5일엔 국회에서 '전투력 강화를 위한 병역제도 개선방안- 모병제를 중심으로' 토론회도 열렸다. 모병제를 지지할지 말지의 주된 논거는 이 토론회 제목에서 보듯 '전투력 강화'에 더해 국방비 등 병역제도를 둘러싼 사회적 비용의 효율적 집행이다.

'돈을 더 쓰자'거나 '세금을 더 내자'는 말은 드물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한국의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수탈하며 살고 있다. 그 수탈이 거의 강도 수준이다. 20대 초반 젊은이들을 월 3만 3천 ∼ 4만 4천원씩 주고 2년동안 군복무를 시킨다.
분단국가이고 전쟁 발발 위협이 높기 때문에 징병제를 실시한다고 해도, 돈은 줘야 할 것 아닌가?

옛날엔 못살아서 그랬다 치자. 세계 선진국들이 모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이들 나라 가운데 드물게 복무기간 9개월의 징병제를 실시하는 독일은 입대 최하 연령인 만 22살 남자의 각종 수당을 뗀 최저 기본급(2004년 8월 1일 기준)으로 월 1470유로(약 180만원)를 지급하고 있다.

대한민국 기성세대는 국가 공동체를 유지·재생산하는데 필요한 비용(통상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을 20대 초반 젊은이들에게서 거의 공짜로 착취하면서 자기들은 웰빙을 노래하고 있다.

그 사이 젊은이들은 고민하고 고통받고 마침내 목숨까지 잃는다. 연천 총기 사건이 돈 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무관한 것도 아니다. 자기 노동의 대가를 사회가 인정해주지 않는데 그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모든 사병에게 또래 연령층이 일반 직장에서 버는 돈 만큼을 지급하려면 얼마나 들까? 앞의 토론회 발제자인 이상복 국방대학교 교수가, 사병의 연령과 학력을 감안해 평균급여를 산출하고 여기에 전체 사영수, 특수 근무요원 수를 따져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1년에 7조 3천억원이다. 7조 3천억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놀랄 액수도 아니다. 지난해 국민들이 낸 세금 총액(총세입) 152조원의 5%가 채 안된다. 지난해 조세부담률이 19.8%니까, 거칠게 계산하면 지금 납세자들이 연 소득의 1%를 세금으로 더 내면 이 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젊을 때 군에 갔다온 기성세대들은 억울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돈으로 얻을 걸 생각해보자. 지금 병력을 감축하지 않고서 그들에게 평균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말은 감군 없이 모병제로 유지할 수 있는 길의 80% 이상을 연다는 말이 된다.

모병제를 둘러싼 다른 논란들은 세부적인 장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한국의 남자들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가?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법적 성인이 되어서는 군입대가 코앞에 다가와서 아무런 모험도 하지 못한다.

경제능력이 없으니 부모에게서 독립도 못한다. 군에 갔다가 무일푼으로 제대해선 취직하기 바쁘다. 그러니 근대적 개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마마보이로 있다가 바로 마초가 된다. 조금 지나면 혈연 지연 찾고, 이전의 기성세대와 똑같이 닮아간다.

다음 세대를 위해 하는 건, 자기 자식만 외국 보내거나 불법한 방법을 써서 입대 안할 수 있게 해주는 거다. 의지와 관계없이, 마땅한 급여도 없이 강제되는 군복무 2년이라는 기간은, 이렇게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을 재생산하고 있다.

병역제도를 둘러싸고 제일 먼저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은 세금을 더 내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이고, 곧 전역한다. 군에 보낼 아들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기꺼이 세금을 내겠다. 우리 세대보다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젊은 세대들의 출현을 위해서다.

한겨례신문, 조선일보, 매일경제, 국방일보. 해당 관련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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