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호가 사는 세상 이야기

약 40개월 전, LG 전자에서 판매하는 LCD TV를 구매했다. 모델은 47LH40YD. 

당시 TV들은 PDP에서 LCD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던 시점이었고, 제조사에서는 여러가지 기능들을 TV에 탑재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타임머신 같은 기능들인데, 이런 기능들이 상위기종에 탑재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가를 형성하고 있었고, 해당 기능 또한 구매결정에 영향을 미칠만한 수준이 되지 못했다.

TV는 큰 놈이 갑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기능이 없는 놈들 중, 저렴한 놈으로 결정했다.

당시 140만원대로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것 저것 할인을 받아 약 120만원에 구입했다.


한국시리즈의 열기가 무르익을 무렵, TV 상단에 갑자기 검은색 가로줄 1개가 생겼다. 며칠 뒤, 2개로 늘어났다. 갑자기 이놈이 왜이러나 했지만, 마땅히 취할 방법이 없었고, 시청에 악영향을 미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 뒤 부터 상단 가로줄을 기점으로 그 아래부분의 화면이 완전히 깨져서 나오기 시작했다. 오래 켜 놓으면 증상이 완화되기도 했기 때문에 일단 사용을 하면서 어떻게 고쳐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 화면 상단에 가로줄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후 점점 증상이 악화되어 도저히 시청이 불가한 상태가 되었다.


제조사 문의결과, LCD TV의 경우, 패널은 2년, 그 외는 1년간의 무상보증기간을 가진다. 물론 40개월 가량을 사용했기 때문에 무상 수리는 받을 수 없다. 충격이 가해진 것도 아니고, 습기나 기타 악영향을 끼칠만한 것들이 전혀 없는- 가만히 세워두고 켰다 껐다만 반복하는 제품이 문제가 생겼다는 데에 대해 상당히 억울했지만, 제조사에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상 보증기간이 지난 것은 기정 사실이다. 일부 사람들은 진상짓이라도 부려 보라고 했지만, 그보다는 저렴한 비용에 수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증상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각종 디스플레이 커뮤니티를 통해 문의했더니, TAB-IC 불량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TAB-IC는 LCD화면에 글자나 영상 또는 이미지 등이 표시되도록 LCD 패널을 구동하는 직접 회로이다. TAB-IC를 살짝 떼서 알코올로 닦아서 다시 그 자리에 붙이는 방법에 대해 안내가 되어 있어, 과감히 TV 뒷 덮개를 열었다. 인터넷에서 설명하고 있는 TAB-IC와 동일하게 생긴 부품은 없고, 비슷한 놈이 있어 작업을 해 보았지만, 좋아질 듯 하더니, 이내 증상이 재현되었다. 그 외 AD보드나 기타 부품들을 교체 해 보는 방법도 있었으나, 문제가 되는 증상은 AD보드를 포함한 기타 부품들의 문제일 확률은 극히 낮다는게 자체적인 판단이었다.


검색을 하다 보니, TAB-IC 접합용 인두기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가격도 꽤 비쌌다. 국내 LCD 수리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명정보'에 TAB-IC수리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유선으로 문의했다. 자가 수리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왔다. 그 외에 업체들은 TAB-IC불량일 경우, 패널을 통채로 교체한다고 한다.


자가 수리를 포기하고 LG 서비스센터에 A/S를 접수했다. 안내원은 친절했다. 엔지니어가 방문했고, AD보드 부터 교체를 시작했다. 엔지니어는 TV의 증상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AD보드 불량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나도 그러기를 바랬으나, 교체 후에도 증상은 동일했다. 엔지니어는 곧이어 T-CON 보드를 교체 해 보아야 할 것 같다고 했고, 타고 온 자동차에 가서 부품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A/S 기사가 가장 처음 의심했던 AD보드


T-CON 보드는 타임컨트롤러가 탑재된 보드로 LCD액정에 전자신호를 발생시키는 단계에서 그 주기나 시간 등을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하다고 했고, 일단 교체부터 했다.


증상이 말끔히 사라졌으나, TV 상단에 최초에 발생했던 검은색 가로줄은 없어지지 않았다. 두 가지 증상이 동시에 발생했으나 원인은 각기 다른 곳에서 기인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가로줄은 시청에 큰 무리가 없다는 판단 하에 부품비를 지급했다. 약 3만원 정도. 이렇게 대강 수리가 마무리 되는 것 같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문제가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 A/S 기사가 두 번째로 의심한 T-CON보드

(교체하고 증상이 사라졌으나, 이틀후에 다시 재현됨)


TV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답은 간단했다. "패널을 교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라고.

LCD 패널은 고가이다. 3년 반 전에 약 120만원에 구매한 TV의 LCD 패널 교체비용은 약 80만원. 2년 무상이며 이후 사용년한에 따라 수리/교체비용에 차등적으로 할인율이 적용된다. 이는 무척 합리적인 것이, 2년 워런티가 지난 직후 교체해야 하는 사람과 6-7년 사용한 사람과는 할인율이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에 교체 비용에 차이가 발생한다. 나는 약 40개월 사용했으며, 할인율을 적용하니 약 30-40만원. (정확히 기억을 못하겠다.)


TV 보다 훨씬 많은 부품이 사용되고 휴대가 목적인 랩탑 컴퓨터도 5-6년씩 그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의 고장이 나지 않고 사용중인데, 벽에 그냥 걸어놓는 TV가 3년이 조금 넘어 패널 자체를 교환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은 정말이지 억울하다. 그래도 뾰족한 방법은 없다. 교체하는 수 밖에.


"교체 해 주세요"- 라고 했고, "부품 주문 넣고, 도착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라는 답변을 받았다.


가을 야구를 DMB로 보며 연락을 기다렸으나, 2주가 훌쩍 지났고, 삼성의 우승으로 한국시리즈는 끝났다. 


"부품이 단종되었답니다."- 2주만에 연락온 기사가 내게 한 말이다.

"그럼 TV는 고칠 수 없나요?"- 매우 당황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기사가 말했다.


"그럼 어쩌죠?"- 환불 절차를 밟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환불요? 3년 넘게 쓴 TV도 환불을 해주나요?"

"네."


아래 기사 참고 (검색하면 이런 종류의 기사는 매우 많다.)

http://www.consumernews.co.kr/news/view.html?gid=main&bid=news&pid=438087


그리고 곧 이어 환불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감가상각비 제외하고 잔존가 환불을 진행하겠단다.

그 잔존가가 얼마나 되냐고 물으니, 구매 영수증이 있냐고 한다. 구매한지 40개월이나 지난 제품의 영수증이 있을리 만무하다. 없다고 대답하니, 당시 그 제품의 평균 판매가를 기준으로 감가상각을 하겠단다. 일단 그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부품이 없어 수리를 할 수 없으니 감가상각비 제하고 환불을 해 준다? 이거 원 렌탈 TV도 아니고 기분이 별로였다. 일단 나름 조사를 해 보니 방법은 그 뿐이고, 금액이 얼마나 되느냐다.


감가상각비를 구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연수다. 내용연수란 국세청 홈페이지에 기재된 내용에 따르면 '고정자산이 수익획득과정에서 사용될 것으로 기대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즉, TV가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인데, 7년밖에 되지 않는다는게 참 아이러니하다. 또한 이 내용연수가 지나면 초기 구입한 금액이 모두 감가되어 잔존가가 0원이 된다는 의미도 된다. 다시 말하면 700만원짜리 TV는 1년에 100만원씩 감가가 된다는 의미다. 





내가 구입한 TV는 약 120만원 가량을 주고 구매했기 때문에 구입 금액을 7로 나누면 1년에 약 171,429원 정도가 감가된다. 좀 더 정확한 계산을 위해 월 감가 금액을 계산해 보면 약 14,286원이다. 부품이 없어서 수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월 14,286원을 내고 TV를 사용했다고 보면 된다. 10년넘게 아무 고장 없이 쓰는 사람에 비해 나 같은 경우는 완전히 똥 밟은 케이스다. 내가 40개월을 사용했으니, 약 571,440원 정도가 감가되고 남은 금액은 63만원 정도 된다. 이 금액이 잔존가가 아니고 여기서 10%를 가산해야 한다. 따라서 70만원 정도가 잔존가가 된다.


다시 전화가 왔다. 잔존가가 80만원 정도 된단다. 제품 금액을 얼마로 잡았냐고 하니 140만원 정도로 잡았단다. 내가 구매한 금액보다 비싸게 계산했기 때문에 10만원 정도 더 가산된 금액이었다.(동일한 경우를 겪는 사람이라면 구입한 금액과 당시 판매 평균 금액을 비교 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소비자 정책 상 전자제품의 부품 보유기간은 제품의 내용연수와 동일하다. 즉, 잔존가가 0이 될 때 까지 수리가 가능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제조사에서 부품을 임의로 단종시켰기 때문에 환불이 진행되는 것이다.





수리하는데에도 비용이 든다. 나 같은 경우 주요 부품인 액정이 불량이었기 때문에 수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약 30-40만원의 비용이 드는데, 잔존가를 환불받아서 이 수리비를 더하면 거의 동일한 급의 TV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고 방법도 이 것 뿐이었기 때문에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따져보면 고장난 것 자체가 짜증이 날 뿐, 수리불가로 인한 피해는 사실상 크게 없었다. 그런데 만약 30-40만원이 아닌 3-4만원짜리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데 단종되었다면 상대적으로 매우 억울할 수 밖에 없다. 3-4만원만 투자하면 고쳐서 사용할 수 있는데, 잔존가를 환불받은 금액으로는 동일한 급의 TV를 구매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튼, 기존 TV는 제조사에서 수거했고, 며칠 후 새 TV가 집으로 왔다.

(사실) 잘 뽑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