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호가 사는 세상 이야기

문장을 쓰는 일은 쉽다. 그저 주어 하나, 술어 하나를 가져다가 이어 붙이면, 그것은 한 개의 문장이 된다. '바위는 춤췄다' 라는 문장과 '그녀는 올리브 한 개를 입에 넣더니 손가락으로 씨를 빼내어 마치 시인이 구두점을 정리하듯 우아한 몸놀림으로 재떨이에 버렸다'라는 문장은 똑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문장을 쓰는 일은 또한 쉽지 않다. 한 문장 뒤에는 그 문장을 쓴 사람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억과 생각, 그리고 그것들이 얽혀서 만들어낸 거대한 세계가 존재한다. 누구의 것이든 그 세계는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소설보다도 거대하다. 심지어는 그 문장을 쓴 사람조차 그 세계의 처음과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이니 말이다.

문장을 무기로 싸우는 일이 저열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는 타협이 불가능하다. 내 문장도 옳고, 당신의 문장도 옳은 경우는 없다. 여기에는 이기느냐 지느냐의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All or nothing, 0 or 1.

만약 당신도 이 싸움에 말려들게 된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 밖에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이겨라.'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다음 문장을 쓸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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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 2년이나 남은 대학생활이지만.
공무원이 되거나 변호사가 되거나, 아니면 작가가 되는 데
대학은 아무런 역할도 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대학은 청소부가 되거나 도장 파는 사람이 되거나
구두닦이가 되는 것을 치열하게 막고 있다.

교수들의 강의 노트는 수십 년째 손때가 묻어 너덜거리고,
여전히 개론만 가르친다.
그 많은 개론들을 공부해서 우리는 훌륭한 회사원이 될 수 있을까.
대학은 아무런 해답도 알려주지 않는다.
억지로 입을 벌리고 한 꾸러미의 편견을 쑤셔넣은 것이야말고 대학이 현재 우리에게 저지르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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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이 아저씨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세상에서 두번째로 슬픈 일이다.
물론 가장 슬픈 일은
소녀들이 아줌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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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마다 .. 어휴 죽겠다 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할때마다 그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 그래. 그렇게 죽고 싶으면 그냥 콱 하고 죽어라. 죽어.
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튀어나오려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 친구를 나무랄 일만도 아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노상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항상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는 편이지만, 가끔 끼니를 거르고 집에 들어가면 엄마를 붙잡고 하는 말이. 엄마 나 지금 배고파 죽겠어.. 아니었던가.

얼마전 업무차 오후에 외근을 나갔다 오는 길에 버스에서 여중생 둘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었다.
" 독사 디따 재수없지 않냐 어휴 난 죽는 줄 알았어. 나 뽀리까는거 직통 딱걸렸잖냐. 아 존나 쪽팔려."
"왕재수. 날 잡아 잡수 하든지 아님 배째. 뭐 그럼 지가 어쩔건대?"

그리고 나서 약속이 있어서 지하철로 갈아탔다.
역 플랫폼에는 광고인지 디자인인지 모르게 벽을 꾸며 놓았는데, 70년대 영화속의 남녀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씌여 있었다.
' 죽을 때 까지 당신만을 사랑하겠어요'
'아니오, 내가 죽을 때 까지 당신을 사랑할 거요'

그걸 보면서 여중생들의 말이 떠올랐다. 온통 죽겠다는 말이 아우성 치는 듯 했다.
인구과밀과 식량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데, 그때마다 예외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죽었다.
내 표현이 좀 심할지도 모르지만 죽고싶다는 사람들 다 모아서 그런 전쟁터에 내 보내면 어떨까.
그러면 다시는 그런 말을 입밖에 내지 않을 테니까.

말은 한 번 뱉고 나면 주워담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반면교사로 다가온다.
나부터.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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