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호가 사는 세상 이야기

문장을 쓰는 일은 쉽다. 그저 주어 하나, 술어 하나를 가져다가 이어 붙이면, 그것은 한 개의 문장이 된다. '바위는 춤췄다' 라는 문장과 '그녀는 올리브 한 개를 입에 넣더니 손가락으로 씨를 빼내어 마치 시인이 구두점을 정리하듯 우아한 몸놀림으로 재떨이에 버렸다'라는 문장은 똑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문장을 쓰는 일은 또한 쉽지 않다. 한 문장 뒤에는 그 문장을 쓴 사람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억과 생각, 그리고 그것들이 얽혀서 만들어낸 거대한 세계가 존재한다. 누구의 것이든 그 세계는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소설보다도 거대하다. 심지어는 그 문장을 쓴 사람조차 그 세계의 처음과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이니 말이다.

문장을 무기로 싸우는 일이 저열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는 타협이 불가능하다. 내 문장도 옳고, 당신의 문장도 옳은 경우는 없다. 여기에는 이기느냐 지느냐의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All or nothing, 0 or 1.

만약 당신도 이 싸움에 말려들게 된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 밖에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이겨라.'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다음 문장을 쓸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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